조용했던 폐교에 다시 빚어지는 손의 예술
부산광역시 기장군은 한때 어업과 농업 중심의 지역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도시 근교의 여유로운 생활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기장군 내에서도 일부 마을은 여전히 고령화와 청년층 유출로 인해 과거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몇몇 초등학교는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를 피할 수 없었고, 그 자리는 수년간 방치되며 지역 공동체의 소외감을 더욱 심화시켰다. 그런 공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장군 정관읍의 한 폐교다.
이 학교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지만, 최근 공공기관과 예술단체, 그리고 주민들이 힘을 모아 ‘공예 예술촌’으로 재탄생하였다. 단순한 문화센터가 아닌, 예술인 창작 공간과 마을 커뮤니티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 예술촌은 기장군 안에서도 매우 독특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중요한 점은 단순히 ‘예술을 유치한 공간’이 아니라, 주민과 예술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존형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해당 폐교가 공예 예술촌으로 변모하게 된 과정과 구성, 실제 운영 방식,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반응과 참여를 중심으로 성공 요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공간 재생과 예술촌 조성 과정 – 버려진 폐교에 예술이 뿌리내리기까지
해당 폐교는 2014년 공식적으로 폐쇄된 후, 기장군청의 관리를 받으며 6년 이상 방치된 상태였다. 2020년, 부산문화재단과 기장군이 공동으로 기획한 ‘유휴공간 문화재생 시범사업’의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초기 아이디어는 폐교를 활용한 단기 전시 공간이었으나, 기장 지역의 수공예 작가 수가 예상보다 많고, 예술 교육 수요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영되면서 장기적 예술촌 형태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학교의 구조적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리모델링이 진행되었으며, 교실은 도자기, 섬유, 금속, 유리 등 각기 다른 공예 장르별 작업실로 분리되었다. 체육관은 복합 전시관으로 개조되었고, 옛 교무실은 마을 커뮤니티 센터로 변신하였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특징적인 부분은 건축뿐 아니라 프로그램 운영에 주민이 직접 참여했다는 점이다.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자문단은 “아이들이 떠난 공간이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나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예술촌 운영 방안에 목소리를 냈고, 일부 주민은 직접 예술 프로그램의 조교나 보조인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공간은 단순한 ‘전시의 장소’가 아닌, 일상 속에서 살아 있는 문화의 거점으로 변화해갔다.
공예 예술촌의 운영 구조와 주민 참여 방식
현재 기장 예술촌은 부산문화재단 산하의 전담 팀과 마을 운영위원회가 협력하는 이원화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공간 내에는 상주 작가 10여 명이 입주해 있으며, 이들은 각자의 작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정기적으로 주민 대상 공예 교육과 공동 전시회를 개최한다. 월 2회 열리는 ‘공예 오픈데이’에는 방문객이 작가의 작업실을 견학하고, 간단한 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문화향유의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주민 대상 맞춤형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고령층 주민을 위한 ‘은퇴 후 공예 클래스’, 주부들을 위한 ‘생활소품 만들기’, 청소년 대상의 ‘진로 체험형 미술교육’ 등이 계절별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 강좌는 예술촌에서 직접 양성한 지역 강사가 진행하기도 한다. 주민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오래된 공간이 예술로 다시 태어나니 마을이 살아난 느낌”이라는 반응부터, “직접 만든 도자기를 손자에게 선물하니 삶의 자부심이 생겼다”는 말까지 다양한 만족도가 조사되었다. 실제로 기장군청의 2023년 하반기 문화체험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예술촌 이용 주민 중 83%가 ‘지역에 꼭 필요한 공간’이라 답했고, 76%는 ‘정기적으로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주민은 더 이상 예술의 관람자가 아닌, 예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성과와 향후 과제 – 예술과 지역이 공존하려면
기장군의 폐교 공예 예술촌은 지역 문화재생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첫째, 공간을 단순히 리모델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콘텐츠와 사람 중심의 재생을 실현했다는 점이 크다. 둘째, 예술인과 주민이 상호작용하며 지속 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셋째, 교육과 관광을 동시에 고려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예술촌 내 공예품은 온라인 마켓과 지역 특산품 매장을 통해 판매되고 있으며, 일부 관광 패키지에도 포함되어 문화 소비 확장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입주 작가들의 거주 및 작업 안정성을 위한 중장기 지원체계가 부족하고, 행정 절차가 복잡해 지속적인 프로그램 기획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방문객 증가에 따른 주차 공간 부족, 지역 내 교통 접근성 문제 등 인프라적 보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델이 일회성 행정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뒷받침이다. 지역 문화재생 사업은 단기 성과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기장군 공예 예술촌은 예술과 마을이 조화를 이루는 좋은 출발을 보여주었지만, 이제는 다음 단계인 ‘문화 자립형 마을 운영 체계’로의 진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럴 때 이곳은 단지 하나의 성공 사례를 넘어, 전국 농어촌 지역의 폐교 활용과 지역문화정책의 모범적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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