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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군의 폐교를 활용한 ‘역사 문화 체험관’ 탄생 이야기

tae-content 2025. 6. 27. 00:05

역사 속 시간이 멈춘 곳, 폐교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인천광역시 강화군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군사적 요충지이자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해온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도시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강화도 일대의 마을들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 산업 변화로 인해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각 마을에 하나씩 존재했던 폐교된 초등학교와 분교들이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수백 명의 학생들이 뛰놀던 공간은 지금은 잡초로 뒤덮인 폐허가 되었고, 마을 주민들에게는 “이제는 필요 없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인천 강화군의 폐교 활용

 

그런데 2021년, 강화군 내가면의 한 폐교가 다시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과거의 교실이 역사 문화 체험의 장으로 바뀌고, 운동장에서는 갑옷 입기 체험, 전통 활쏘기, 대장간 시연 등이 열렸다. ‘○○초등학교 내가분교’는 이제 단순한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지역 역사 콘텐츠가 살아 숨 쉬는 체험형 교육 공간이자 관광 자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이 폐교가 체험관으로 변모한 배경, 리모델링 및 콘텐츠 구성 과정, 주민 참여와 운영 구조, 그리고 성공적 운영 요인과 향후 과제까지 종합적으로 다뤄본다.

 

역사와 장소의 연결 – 공간에 스토리를 입히다

강화군은 고려 궁지, 광성보, 갑곶돈대, 조선시대 외규장각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정적인 관람 위주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강화군청은 2020년부터 ‘체험형 역사 관광 자원화 프로젝트’를 기획하였고, 그 핵심 중 하나가 폐교를 활용한 역사 문화 체험관 조성 사업이었다. 내가면의 ○○분교는 과거 이순신 장군의 강화 훈련 기록이 남아 있는 장소 인근에 위치해 있었고, 지역 향토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인근 마을이 병영 유적지였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해당 폐교는 조선 후기 군영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내부 교실은 병사 생활 재현관, 전통 병영 식생활 체험실, 조선시대 병기 전시관 등으로 개조되었고, 야외 운동장은 활터, 말 타기 체험장, 군영 캠프 파이어장으로 재탄생했다. 리모델링은 공간의 외형을 최대한 보존한 채 내부만 개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교육청과 문화재청의 협의를 거쳐 역사적 고증과 문화적 재현에 충실하게 설계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강화도 주민이 스스로 만드는 콘텐츠’였다. 군청은 마을 주민 중 퇴직 교사, 전통 공예가, 역사 해설사를 모집해 직접 콘텐츠 기획단으로 참여시키면서 ‘단순한 복원’이 아닌 ‘살아있는 공간 만들기’를 지향했다. 그 결과, 이 체험관은 기획부터 운영까지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된 참여형 역사 콘텐츠 공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운영 방식과 체험 콘텐츠 구성 – 교육, 관광, 공동체의 만남

‘내가 역사 문화 체험관’은 현재 강화군 문화관광과 산하 마을협동조합이 공동 운영하고 있으며, 공공-민간-지역주민 3자 협력 체계로 운영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다. 체험관은 평일에는 관내 초·중학교 학생 대상 교육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되고, 주말에는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한 개별 체험으로 전환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전통 무기 만들기(나무 활, 모형 갑옷), 대장간 체험(쇠 못 만들기), 야외 군영 놀이(고무 총 전투 시뮬레이션), 전통 병영 음식 만들기(누룽지, 곤쟁이 장국) 등이다. 이 외에도 여름에는 ‘야간 별자리 병영 캠프’, 겨울에는 ‘눈 속에서 치르는 병영 전투 훈련’ 등 계절별 테마 콘텐츠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모든 체험은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 ‘지역 전문가와 어르신’이 함께 참여하여 세대 간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예를 들어 전통 활쏘기 체험에서는 실제 전국체전 출전 경력이 있는 지역 노장이 직접 지도하며, 전통 음식 체험은 지역 할머니들이 가마솥에 직접 끓여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수익 구조는 체험비, 기념품 판매, 지역 농산물 연계 장터 등으로 다양화되어 있으며, 발생한 수익의 일부는 마을기금으로 적립되고, 운영자에게 일정 활동비가 지급된다. 특히 이 체험관은 단순한 수익 창출보다 지역 정체성 회복과 지역민 자긍심 고취라는 면에서 더욱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리 마을도 역사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자발적으로 다른 폐교 활용 방안을 제안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지속 가능성과 확산 가능성을 위한 조건 분석

‘강화군 역사 문화 체험관’은 단순한 폐교 재활용을 넘어, 지방 소멸 대응형 지역자산 순환 모델로서 정책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공간 재생과 콘텐츠 기획을 따로 보지 않고 통합 설계했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단순히 예산을 들여 건물을 수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어떤 콘텐츠를 누구와 어떻게 만들고 운영할 것인지를 동시에 계획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둘째, 참여 주체의 다양성과 지속성 구조도 성공에 기여한 요인이다. 행정 주도형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 활용도가 낮아지지만, 주민이 중심이 된 프로그램은 자체 생명력을 가지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셋째, 교육과 관광을 함께 고려한 점도 주효했다. 관내 학생을 위한 사회과 체험 학습과 외부 관광객 유치라는 이중 수요를 반영한 프로그램 구조는 지역 내외의 수익과 교육적 효과를 모두 달성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몇 가지 과제도 존재한다. 예컨대, 체험관을 방문하기 위한 교통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 콘텐츠의 정기적 리뉴얼을 위한 전문 인력 부족, 장기적 운영을 위한 법적·행정적 안정성 확보 필요 등은 여전히 해결이 필요한 부분이다. 향후 이 체험관이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폐교 활용 모델’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평가 시스템, 콘텐츠 개발 R&D, 청년 해설사 육성 사업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강화군 내가면의 이 체험관은 단순한 역사 공간이 아니라, 주민이 역사의 주체로 서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전국의 폐교 활용 정책이 참고해야 할 가장 큰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