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학교, 밥상이 되다
강원도 평창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겨울 스포츠로 유명한 도시지만, 그 이면에는 농촌 고령화와 인구 유출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특히 소규모 읍·면 단위에서는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매년 폐교가 늘어나고 있다. 한때 아이들로 북적였던 학교는 어느새 잡초가 무성한 텅 빈 건물로 남겨졌고, 그 풍경은 지역의 침체된 현실을 상징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평창군 봉평면의 한 폐교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바로 지역민을 위한 ‘공유주방’이다. 이 공유주방은 단순히 음식을 조리하는 공간을 넘어, 지역 여성의 일자리 창출, 세대 간 소통, 관광 활성화 등 다양한 사회적 효과를 이끌어내며 주목받고 있다. 왜 하필 ‘주방’이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폐교가 마을 경제를 되살리는 공간으로 바뀌었을까?
폐교에서 ‘마을 부엌’으로, 공간의 전환 과정
이 프로젝트의 출발은 2021년, 평창군청과 한 사회적기업의 협업에서 비롯되었다. 봉평면의 ○○초등학교는 폐교된 지 10년이 넘었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건물을 철거하기에는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매각 시도도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중 지역에 기반을 둔 여성 협동조합이 “공유 조리 공간이 있다면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식품 제조가 가능하다”는 제안을 했고, 군청은 이를 적극 수용하게 되었다. 기존의 급식실과 조리실을 리모델링해 최신 위생 설비를 갖춘 공동 조리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나머지 교실은 식자재 창고, 소규모 판매 부스, 교육 공간으로 재배치되었다. 외부 공간은 플리마켓과 소규모 장터가 열리는 커뮤니티 광장으로 재구성되었다. 평일에는 지역 여성들이 이곳에서 직접 만든 반찬, 전통장류, 건강 간식 등을 제조하고, 주말에는 방문객에게 판매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운영 방식과 지역민의 참여 구조
이 공유주방은 단순 임대 시설이 아니라, 협동조합 모델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지역 여성 20여 명이 참여한 ‘평창 공유부엌 협동조합’이 직접 운영하며, 수익 배분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일정 교육을 이수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존에 일자리를 갖기 어려웠던 중장년 여성과 어르신에게 특히 매력적인 시스템이다. 또한, 평창군청은 식품 위생 교육, 포장 디자인, 전자상거래 교육 등 실질적인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으며, 관내 고등학교와 연계해 ‘청소년 바리스타 실습’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참여형 운영 모델은 지역 내 소외계층의 경제적 자립을 도우며, 마을 전체에 ‘함께 만드는 밥상’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퍼뜨리고 있다. 더욱이, 지역 특산물(메밀, 더덕, 표고버섯 등)을 활용한 상품은 소규모 농가와의 직거래를 통해 공급되어, 지역 경제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관광 자원화와 지속 가능성을 위한 과제
이 폐교 공유주방 프로젝트는 관광자원으로서도 가치가 크다. 강원도 평창을 찾는 관광객들이 ‘지역 밥상 체험’이나 ‘로컬 쿠킹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계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지역 체류 시간이 늘어나고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여름에는 하루 평균 60명 이상의 방문객이 공유주방 공간을 찾았고, 그중 약 40%가 외지인이었다. SNS에서도 “폐교에서 먹는 지역 밥상”이라는 콘텐츠가 바이럴되며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 모든 긍정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계절에 따라 방문객 수에 큰 차이가 있고, 조합원의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도 현실적인 문제다. 또한, 지방소멸 위기에 맞선다는 상징적 의미는 크지만, 수익성 확보 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따라서 향후에는 체험형 관광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청년 창업가를 유입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 공유주방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폐교의 새로운 활용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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