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교실, 되살아난 창작의 에너지
농촌과 지방 중소도시에서 폐교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상실을 넘어, 공동체 중심이 사라지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지자체와 문화기관은 이 폐교 공간을 청소년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한 공부의 공간이었던 과거 학교가, 이제는 창작, 실험, 놀이, 예술 활동의 중심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공간 재생을 넘어, 청소년의 자기 표현 능력, 사회 참여 역량, 진로 탐색 기회를 확장하는 장으로서 매우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공공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폐교를 창작 공간으로 활용하는 모델은 문화 복지와 교육 격차 해소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국내 사례들을 비교하며, 각각의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조성되고, 운영되며, 어떤 성과와 과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향후 청소년 중심 폐교 재생 사업의 방향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주요 사례 비교 – 서울, 전북, 제주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시 마포구의 ‘홍은예술창작센터’는 대표적인 폐교 기반 청소년 문화예술 창작 공간이다. 2008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서울문화재단이 리모델링해 창작공간으로 탈바꿈시켰으며, 이곳은 청소년을 위한 연극 워크숍, 영상제작 캠프, 그래픽 아트 스튜디오 등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청소년들이 직접 연출하고 기획하는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리며,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 있는 청소년에게 실질적인 진로 체험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전라북도 순창군은 ‘청소년 로컬랩’을 중심으로 농촌형 창작 공간 모델을 운영 중이다. 폐교된 중학교를 리모델링해 음악 작업실, 녹음실, 3D 프린팅실, 목공방 등 다양한 창작 기능을 배치하고, 순창군 지역 청소년들이 스스로 창작 콘텐츠를 제작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연결되는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에서는 ‘청소년 문화공간 다락(多樂)’이 대표적이다. 이 공간은 폐교된 분교를 리노베이션하여 디지털 아트, 미디어 영상 편집, 라이브 음악 연습실을 갖춘 융합형 창작 센터로서 운영 중이며, 관광지와의 연계로 도외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세 곳은 모두 폐교를 기반으로 하지만, 도시형(서울), 농촌형(전북), 관광연계형(제주)이라는 점에서 공간 기획과 운영 방식에 차이가 나타난다.
운영 구조와 프로그램 구성의 차이점
세 사례 모두 폐교라는 동일한 물리적 기반을 공유하지만, 운영 주체와 프로그램 설계 방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홍은예술창작센터는 서울문화재단 직영 모델로, 전문 예술가와 기획자가 중심이 되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청소년은 참여자로서 활동한다. 이 경우 콘텐츠의 질은 높지만, 청소년의 자율성과 주도성이 다소 제한된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순창의 로컬랩은 지역 청년과 청소년이 공동기획자로 참여하는 구조로, 학생들이 스스로 지역 이슈를 콘텐츠로 풀어내거나, 마을 행사와 연계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청소년의 주체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콘텐츠의 완성도나 예산 확보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제주 ‘다락’은 민관 협력형 운영 모델로, 제주문화재단과 민간 예술단체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역 기업과 후원 네트워크가 함께 참여해 재정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공간 내부는 카페, 갤러리, 공유 사무실 등 청소년 외 다양한 계층이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적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세대 간 교류와 지역 통합적 문화 거점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즉, 각 모델은 자치단체의 정책 방향, 지역 사회의 참여 역량, 예산 구조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성과와 과제 – 창작 공간으로서 폐교 활용의 지속 가능성
폐교를 청소년 창작 공간으로 전환한 사례들은 분명 지역 사회와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창의성과 감수성이 높은 시기의 청소년에게 이러한 공간은 표현의 자유와 진로 탐색의 장이 될 뿐 아니라, 또래 간 소통과 협력, 지역 사회와의 연결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서울 홍은예술창작센터의 참여 청소년 중 일부는 예술대학에 진학하거나, 미디어 콘텐츠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순창의 로컬랩에서는 청소년이 주도한 프로젝트가 실제 마을 축제로 확대되며 주민 인식 개선과 자긍심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하다. 첫째, 대부분의 공간이 외부 예산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어 지속적인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둘째, 프로그램 운영 인력의 전문성과 장기 고용 안정성 확보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셋째,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주민과 청소년 이용자 간 공간 활용에 대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어, 이해 조정 구조가 사전에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소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것만큼이나, 프로그램 질과 안전성, 멘토링 체계의 전문화도 동시에 고민되어야 한다. 폐교를 창작 공간으로 전환하는 일은 단순히 학교 건물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가 청소년에게 어떤 미래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묻는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모델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간과 콘텐츠, 사람을 잇는 입체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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