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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활용

폐교를 리모델링한 ‘마을 목욕탕’ 사례와 농촌 복지의 재발견

사라진 목욕탕, 그리고 농촌의 불편한 일상

도시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생활 기반 시설이 농촌에서는 ‘사치’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농촌 지역에서는 마을 안에 목욕탕 하나 없는 경우가 많고, 주민들이 직접 차를 몰고 30분~1시간 거리의 읍내까지 이동해야만 겨우 목욕을 할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 이러한 불편은 단순한 생활의 불편함을 넘어서, 노인층의 위생·건강 문제와도 직결된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마을 목욕탕'

 

실제로 농촌 고령자 가운데 피부 질환, 욕창, 당뇨 등 만성질환을 앓는 이들이 적지 않으며, 이들에게 정기적인 온수 목욕은 치료이자 예방의 수단이다. 그러나 공공목욕탕은 지속적인 적자 운영으로 사라지고, 민간 업체도 수요 부족으로 들어서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폐교를 리모델링한 마을 목욕탕’ 모델이다. 학생들이 떠난 교실이 따뜻한 물이 흐르는 공간으로 바뀌고, 마을 어르신들이 다시 모여 함께 웃으며 등도 밀어주는 장소가 되는 기적 같은 복지 실험이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폐교를 마을 목욕탕으로 재탄생시킨 사례를 중심으로, 농촌 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새로운 대안을 조명한다.

 

폐교에서 피어난 온기 – 실제 사례 분석

충청남도 금산군의 한 농촌 마을에서는 2019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마을 복지센터 겸 목욕탕’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은 교육청과의 장기 무상임대 협약을 통해 마을 협동조합이 운영 주체로 선정되었고, 노후 교사 건물 일부를 개조해 남·여 공용 탕과 샤워실, 대기실, 세탁실 등을 갖추었다. 매주 화·금요일은 마을 어르신 목욕 무료 개방일로 운영되며, 인근 마을의 고령 주민들도 이곳을 찾는 단골이 됐다. 이외의 시간에는 소액의 이용료를 받고 일반 주민에게 개방해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으며, 일부 요일에는 이·미용 봉사, 건강상담, 발마사지 서비스 등 복합형 주민복지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 공간은 단순한 목욕시설을 넘어, 마을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소통의 장으로 기능한다. “탕 안에서 읍내 소식부터 자식 자랑까지 다 나온다”는 어르신들의 말처럼, 이곳은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외로움을 덜어주는 사회적 돌봄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역사회의 유휴공간이 어떻게 삶의 필수 기능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복지적 가치와 지역 공동체 회복 효과

폐교를 마을 목욕탕으로 전환한 사례는 농촌복지의 대안 모델로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첫째, 이 모델은 고령층을 위한 생활밀착형 복지 인프라 확보라는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건물을 활용함으로써 초기 건축비 부담을 줄이고, 단열·배관 등 필수 설비를 최소화하여 비용 대비 효율성이 높다. 둘째, 주민 참여형 협동조합 운영 구조를 도입할 경우, 마을 구성원이 운영에 직접 관여하게 되면서 공동체 의식과 자율 복지 역량이 자연스럽게 향상된다. 셋째, 단순한 위생 기능을 넘어 이 공간은 사회적 관계 회복의 중심지로 기능한다. 특히 1인 고령 가구가 많은 농촌에서는 목욕을 핑계로 이웃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건강과 직결되며, 우울감 예방과 정신 건강 유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넷째, 지역 청년이나 중장년층에게는 작은 일자리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내 순환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농촌에서 복지는 의료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물, 온기, 사람, 대화가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따뜻한 복지일 수 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제언과 정책적 과제

폐교 기반 마을 목욕탕 모델이 지속 가능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선, 교육청과 지자체 간의 협약 구조를 간소화하고, 장기 임대에 대한 법적 보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현재는 지자체가 마을 복지센터로 전환하려 해도, 폐교 소유권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운영 초기 2~3년간의 기본 설비 지원과 인건비 보조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마을은 전기·보일러·배관 공사비를 감당하기 어려우며, 운영 인력을 자원봉사에만 의존할 경우 장기 지속성이 떨어진다. 셋째, 마을 자치조직의 교육과 역량 강화를 위한 복지운영 코디네이터 파견 제도를 도입해 마을이 주도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넷째, 폐교 기반 복지모델의 전국 사례를 수집·분석해 정형화된 모델과 운영 매뉴얼을 개발함으로써, 타 지역 확산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 마을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을 함께 씻고, 단절된 이웃과 다시 연결되며, 폐교라는 죽은 공간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는 살아 있는 복지 플랫폼이다. 더 많은 마을이 이 따뜻한 실험에 동참할 수 있도록, 행정과 공동체의 의지가 만나는 구조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