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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활용

폐교 자산의 무단 방치 문제와 행정 책임 구조 분석

폐교는 문을 닫았지만, 행정은 어디로 갔는가

전국적으로 매년 수십 개의 학교가 폐교되면서, 지방 곳곳에는 사용되지 않는 유휴 교육자산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들 폐교 중 상당수가 방치된 채 수년간 아무런 활용 계획 없이 남겨져 있다는 점이다. 흔히 폐교 재생이라는 말이 정책적 화두로 오르내리지만, 실제로는 폐쇄 이후 수년 이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폐교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창문이 깨지고, 외벽은 훼손되며, 운동장은 잡초로 뒤덮인 채 범죄·화재 위험까지 떠안고 있는 폐교가 적지 않다.

 

폐교 자산의 무단 방치 문제

 

그런데 이러한 현실에 대해 책임을 물을 주체는 불분명하다. 교육청은 소유권만 보유하고, 사용계획이 없다며 ‘예산 없음’으로 방임하고, 지자체는 관리 권한이 없다며 사실상 행정적 회피 태도를 보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본 글은 이러한 폐교 방치 문제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그 중심에 있는 행정 책임 체계의 문제점을 파악하며, 실효성 있는 개선 방향을 모색한다. 방치된 폐교는 단지 건물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자산의 무책임한 관리 구조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폐교 방치 현황과 그로 인한 문제들

2023년 기준 전국에 남아 있는 폐교는 약 3,800여 개에 달하며, 이 중 3분의 1 이상은 실제 활용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장기 방치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의 관리 통계상 ‘활용 예정’으로 분류된 폐교조차 5년 이상 방치된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 폐교 방치가 심각한 지역 중 하나인 전남의 한 군 단위 지역에는, 초등학교 폐교가 10년째 그대로 남아 있어 주민 불안과 지역 미관 훼손 문제를 동시에 유발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폐교는 무단 침입, 폐기물 불법 투기, 화재 발생 사례가 보고되었고, 청소년의 일탈 장소로 악용되거나 야생동물 서식처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폐교가 사실상 ‘관리 주체 없음’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청은 토지 및 건물 소유권을 갖고 있지만, 교육 목적 외 활용 계획이 없다는 이유로 예산 배정조차 하지 않으며, 지자체는 교육청이 관할하는 공간이라는 이유로 시설 보수나 경비 인력 투입에 난색을 보인다. 이처럼 폐교는 국가 공공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행정기관도 실질적인 관리 의무를 지지 않는 회색지대에 머무르고 있다.

 

행정 책임 구조의 모호성과 이중 위임 문제

폐교 방치 문제의 본질은 소유권과 사용권이 분리된 행정 체계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폐교는 교육청 산하 시·도교육청 또는 지방교육지원청이 소유하고 있으며, 원칙적으로 교육 목적 외의 활용은 불가하거나 교육청 내부 재산심의위원회 등을 거쳐야 가능하다. 하지만 활용 계획이 없는 경우에도, 보수·점검·위험 대응 등에 대한 명확한 의무 조항은 부재한 상태다. 즉, 교육청은 법적으로 자산을 소유하고 있으나 실질적 유지관리에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다. 한편 지자체는 활용 의지가 있더라도 법적으로 무단 개입할 수 없고, 교육청의 ‘무상 사용 승낙’ 없이는 예산 투입조차 어렵다. 실제로 한 중소도시에서는 지자체가 방치 폐교의 외벽 균열을 보수하려 했으나, 교육청의 허가가 지연되어 수개월 동안 안전사고 위험이 방치된 사례도 있다. 이처럼 책임은 나뉘었으나 행정적 권한은 불균형적으로 분배되어, 어느 누구도 실질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관할 기관이 서로 ‘책임이 없다’며 공문을 주고받는 행정 공백 상황도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공공 신뢰를 훼손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 제안과 행정 구조 개편 필요성

폐교 자산의 무단 방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이원화된 행정 책임 구조를 단일화하거나 조정 가능한 협의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교육청이 폐교 소유권을 유지하더라도 일정 기간 이상 활용 계획이 없는 자산에 대해서는 지자체 또는 공공기관에 자동 위임하거나 공동관리권을 부여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둘째, 폐교 자산에 대한 공공시설화 사전 심사 및 위험성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방치 전 단계에서부터 행정 개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지역별로 폐교 관리 전담부서를 설치하거나, 광역 단위로 ‘유휴 교육시설 관리센터’를 설립해 분산된 책임 구조를 통합하고 관리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넷째, 예산 구조 개편도 필요하다. 현재는 폐교 활용에만 예산이 집중돼 있고, 방치 폐교 관리 예산은 별도 항목 없이 묶여 있어 행정 집행이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자산 안전관리 예산’을 신설하거나, 지자체와 교육청 간 매칭 펀드 형태의 공동 예산 구조를 구축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폐교는 그 자체로는 지역의 짐이 될 수 있지만, 행정이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분배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버려진 공간이 지역의 기회로 전환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