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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활용

폐교 공간에서 운영된 ‘1인 창작자 창업 인큐베이터’ 실험 분석

창작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특히 안정적인 공간을

콘텐츠 산업이 점점 다변화되고, 1인 미디어 및 프리랜서 창작자가 증가하면서 ‘일할 공간’의 의미도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영상, 디자인, 공예, 음악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은 조용하면서도 넓고, 저렴하면서도 독립적인 공간을 요구한다. 대도시에서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지방의 폐교는 유휴 상태이면서도 물리적으로 넓고, 일정 부분 리모델링만 거치면 창작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한 장점을 지닌다.

 

폐교 창작 인큐베이터

 

이런 배경 속에서 일부 지자체와 문화기획 단체는 폐교를 활용해 ‘1인 창작자 창업 인큐베이터’로 전환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모델은 단순히 공간을 임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 멘토링, 커뮤니티 운영 등 창작자 생태계 조성까지를 포함하는 점에서 지역 창업 인프라의 새로운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본 글에서는 폐교 기반 창작자 인큐베이터 운영 사례를 중심으로, 그 성과와 과제를 심층 분석한다. 창작자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사회적 지지와 협력의 생태계 안에서 비로소 자란다.

 

폐교에서 창업한 ‘나 혼자 만든다’ 세대

충청북도 제천시에 위치한 한 폐교는 2018년부터 문화도시 예비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되어, 현재 ‘로컬 크리에이터 창작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주로 1인 창작자 또는 초기 창업자를 위한 입주 공간으로 활용되며, 교실 6개를 리모델링해 작업실, 촬영 스튜디오, 공동 회의실, 창작 장비실, 편집실 등으로 구분해 운영 중이다. 입주자는 공모를 통해 선발되며, 주로 영상 제작자, 일러스트레이터, 공예 작가, 1인 출판인, 유튜버, 지역 브랜딩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의 개인 창작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창작랩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 제공을 넘어서 멘토링 프로그램, 법률 및 회계 컨설팅, 마케팅 교육, 지역 상생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함께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입주자는 제천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디자인 상품을 개발하여, 지역 농가와 협업 판매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 다른 참가자는 폐교 인근 마을의 구술 생애사를 수집해 ‘로컬 기록 웹진’을 창간하며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처럼 폐교는 단순히 일하는 곳이 아닌, 창작자들이 관계를 만들고 콘텐츠를 사회적 가치로 확장해 나가는 플랫폼이 되었다.

 

폐교 창작 인큐베이터의 다층적 효과

폐교 공간을 기반으로 한 1인 창작자 인큐베이터 모델은 여러 층위에서 지역과 창작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성과를 제공하고 있다. 첫째, 창작자에게는 저비용 고효율 창업 기회를 제공한다. 고정비용이 높은 도심과 달리, 지방 폐교를 활용한 창작 공간은 최소한의 비용으로도 충분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며, 거주 공간과 가까워 안정적인 창작활동이 가능하다. 둘째, 지역 입장에서는 창작자가 곧 콘텐츠 생산자이자 브랜딩 자원이 된다. 실제 제천 사례에서 입주 창작자들이 만든 콘텐츠는 지역 축제, 전통시장, 관광자원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고, 이는 지역 이미지 개선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셋째, 청년 이주·정착이라는 효과도 뚜렷하다. 일부 입주자는 인큐베이팅 후에도 해당 지역에 남아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며, 외부 청년 창작자 유입의 계기가 되었다. 넷째, 폐교 유지비와 관리비 절감 효과도 동반된다. 창작자들의 지속적 공간 활용은 관리 공백을 줄이고, 건물의 물리적 생명력을 연장시킨다. 폐교는 그 자체로 콘텐츠이고, 창작자는 그 안에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만날 때, 버려졌던 공간은 새로운 이야기를 낳는 무대가 된다.

 

지속 가능한 인큐베이터 운영을 위한 조건

폐교 기반 창작 인큐베이터 모델이 일시적인 실험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제도적·운영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 장기적 공간 사용에 대한 안정성 보장이 필요하다. 현재 많은 폐교 공간이 교육청 소유로 인해 임시 사용에 그치고 있으며, 인큐베이팅 기간 종료 후 창작자들이 갈 곳을 잃는 상황이 반복된다. 교육청과 지자체 간 장기 사용 협약 체결, 혹은 폐교 부지의 목적 변경 허용 등이 제도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둘째, 운영 조직의 전문성과 중간지원 기능 강화가 요구된다. 창작자와 지역을 연결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전문 운영주체가 있어야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 셋째, 로컬 기반 콘텐츠 유통 및 수익화 구조 마련도 핵심이다. 지역 공공기관, 농촌체험마을, 로컬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콘텐츠를 상용화할 수 있는 구조가 설계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창작자의 커뮤니티 형성과 상호 교류를 위한 플랫폼 운영이 필요하다. 폐교라는 공간은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라, 함께 만들고,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창작 생태계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 그곳에 한 명의 창작자가 들어서면, 새로운 지역의 미래가 함께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