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끝나는 순간, 고립이 시작된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노년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고 활기차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한 생계 지원이나 복지 급여를 넘어서, 배움과 소통, 참여가 보장되는 노년기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고령화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도시 외곽을 제외한 농촌과 중소도시의 시니어들은 사회적 관계 단절, 정보 접근의 어려움, 건강한 여가활동의 부재로 고립과 우울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의료적 비용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실험이 바로 폐교 공간을 활용한 시니어 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이다. 아이들이 떠난 학교를 노년의 배움터로 되살리는 이 모델은, 유휴공간의 재활용, 고령자 복지, 주민 공동체 회복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이 글에서는 실제 운영되고 있는 시니어 평생교육 프로그램 사례를 바탕으로, 폐교 기반 평생학습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어떠한 사회적 효과를 만들어내는지를 분석한다.
배움의 재개가 삶을 바꾸다
전라남도 장흥군의 ○○마을은 2015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시니어 평생교육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는 교육청과 군청, 그리고 지역 평생교육기관이 협력해 만들어진 복합형 커뮤니티 공간으로, 60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교육과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 중이다. 주요 강좌는 스마트폰 사용법, 기초 금융 교육, 건강관리, 미술·음악 치료, 문해교육 등이며, 특히 매년 열리는 ‘내 인생 발표회’는 참여 노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나누는 감동적인 자리로 자리매김했다. 해당 공간은 단지 강의를 듣는 곳이 아니라, 배움과 관계가 동시에 이뤄지는 상호작용의 장이다. 참가자들은 수업 후 함께 점심을 먹고, 과거의 학교 추억을 떠올리며 자발적으로 ‘노년 합창단’, ‘고령자 극단’, ‘마을 교양지 편집부’ 등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처럼 폐교라는 장소가 주는 상징성과 정서적 친숙함 덕분에 고령자들은 비교적 빠르게 적응하고, 수동적 참여자에서 능동적 주체로 변화할 수 있었다. 공간은 그대로지만, 그 속에 담긴 역할은 완전히 달라졌다.
폐교 기반 시니어 학습 공간이 주는 사회적 효과
폐교를 기반으로 한 시니어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단순한 학습을 넘어, 지역 사회 전체에 다양한 긍정적 파급 효과를 준다. 첫째, 고령자의 삶의 질 향상이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배움의 주체로 다시 서는 경험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우울감과 외로움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응답했다. 둘째, 세대 간 교류 촉진이다. 일부 프로그램은 지역 청년 또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연계되어, 디지털 교육, 영상 제작, 마을 기록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셋째, 고령자의 사회적 역할 확대다. 폐교 내 일부 프로그램을 수료한 시니어들은 이후 지역 강사로 활동하거나, 인근 마을로 ‘배움 나눔단’을 파견하며 지역사회에서의 재능 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넷째, 공간 유지의 안정성이다. 평생교육센터로 기능하는 폐교는 지속적인 인적 유입과 활동으로 건물 관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장기적으로는 문화예술 행사, 마을회의 등으로 활용도가 확장된다. 교육을 매개로 한 이 공간은 단지 배움의 터가 아니라, 노년의 활기를 회복하는 살아 있는 마을 복지 플랫폼이 된다.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한 조건과 과제
폐교 기반 시니어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과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운영 예산의 안정적 확보가 필수다. 현재 대부분의 사례는 지자체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프로그램 다양성과 전문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 민간 공익재단, 기업 사회공헌과의 연계를 통해 중장기 재원 구조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전문 강사 확보와 교육 콘텐츠 개발이다. 고령자 대상 프로그램은 단순 전달식 강의가 아닌, 참여와 교감, 경험 공유 중심의 콘텐츠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강사 훈련과 커리큘럼 개발이 동반돼야 한다. 셋째, 지역 중심의 자치 운영 시스템이 요구된다. 단지 위탁 운영이 아닌, 고령자와 지역 주민이 함께 운영에 참여하고 의사결정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거버넌스 모델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폐교 공간에 대한 장기 사용 협약과 유지보수 지원 체계도 병행돼야 한다. 시니어에게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고, 폐교는 그 배움의 집이 될 수 있다. 사라진 교실에 다시 울려 퍼지는 학습의 목소리는, 지역이 살아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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