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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활용

폐교에서 열린 ‘지역 축제’, 어떻게 공동체 정체성을 회복했나

학교가 사라진 마을에서, 축제가 다시 시작되다

학교는 단지 교육의 공간을 넘어 마을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상징적인 장소였다. 운동회, 졸업식, 방과 후 놀이터, 야간 강좌와 마을 회의까지… 폐교된 그 순간부터, 마을은 단지 학생 수만 줄어든 게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 기능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폐교를 활용한 ‘지역 축제’ 개최 사례가 늘어나며, 공동체 정체성의 회복과 사회적 관계망 재구성이라는 놀라운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폐교에서 열린 '지역 축제'

 

아이들이 사라진 운동장에 다시 사람들이 모이고, 오래 전 졸업생이 돌아오고, 마을 어르신이 청년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며 단절되었던 세대와 기억이 연결되는 순간들이 생겨난다. 특히 고령화가 심화된 농촌에서 이러한 폐교 기반 축제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본 글에서는 폐교 공간에서 개최된 지역 축제 사례를 분석하며, 어떻게 이 행사가 공동체 정체성을 되살리는 장치로 작동했는지, 그리고 그 문화적 효과와 지속 가능성을 살펴본다. 사라졌던 공간에서 다시 울리는 함성은 단지 즐거움이 아니라, 공동체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였다.

 

폐교에서 다시 피어난 마을의 축제

전라북도 진안군의 한 마을은 2018년 폐교된 초등학교 운동장을 활용해 **‘마을 기억 축제’**를 개최했다. 이 축제는 처음엔 소규모 회고 행사로 기획됐지만, 졸업생, 귀촌 청년, 인근 마을 주민, 지역 예술인들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해마다 규모가 커졌다. 행사 프로그램은 기존의 축제와는 차별화된 점이 많았다. 운동장에서는 **옛날 체육대회 종목(달리기, 줄넘기, 윷놀이)**가 진행되었고, 교실 안은 졸업생들이 보낸 사진과 사연으로 꾸며진 **‘기억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교사 출신 어르신과 청년 예술가가 함께 만든 세대 통합 연극 공연은 마을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이 축제는 단지 보여주는 이벤트가 아니라, 주민과 외부인이 함께 기획하고 만들어낸 공동 창작물이었다. 폐교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모두가 자신의 추억을 꺼내고, 미래를 상상하며 공간과 관계를 재조명하게 되었다. 특히 “그동안 마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이, 이 축제 한 번으로 전부 친구가 됐다”는 말은 폐교 축제가 공동체 관계망 회복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동체 정체성 회복 효과 – 감정, 기억, 관계의 회복

폐교에서 열린 지역 축제가 지역사회에 미친 가장 중요한 효과는 공동체 정체성의 회복이다. 첫째, 폐교라는 장소의 상징성은 주민들에게 공통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자극이 되었다. 특히 40~70대 주민에게 폐교는 자신이 직접 다녔던 곳이고, 자녀를 보냈던 장소이며, 삶의 일부였기에 공간에 대한 감정 이입이 강했다. 둘째, 이 축제를 계기로 그동안 단절돼 있던 세대 간 대화와 이해의 물꼬가 트였다. 어르신들은 옛날 교가를 알려주고, 청년들은 공연과 영상으로 축제를 꾸미며, 자연스럽게 소통이 이뤄졌다. 셋째, 외부인—특히 귀촌자와 방문객—들도 행사에 참여하면서 지역과의 정서적 거리감을 줄이고 소속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공동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 자체가 **‘함께하는 경험’**으로 남아 이후 마을 사업, 주민 회의, 공동 텃밭 조성 등으로 이어지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즉, 축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은 ‘우리 마을이 여전히 살아 있고, 함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이는 공동체의 내면적 정체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지속 가능한 폐교 기반 축제를 위한 조건

폐교에서 지역 축제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벤트 형식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통합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첫째, 공간 활용에 대한 제도적 안정성이 전제돼야 한다. 폐교가 교육청 소유일 경우 단기 대여 형식은 장기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주므로, 축제와 같은 문화행사를 위한 장기 사용 협약 체결이 필수적이다. 둘째, 축제 운영 주체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마을회 중심 운영에서 벗어나 청년, 외부 예술가, 귀촌인, 사회적 기업 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중 주체 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셋째, 축제를 통해 얻은 콘텐츠(영상, 사진, 이야기 등)를 지역 아카이브로 보존하고 교육 자료화함으로써, 다음 세대가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학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축제를 계기로 형성된 공동체 네트워크가 **다른 마을 사업(돌봄, 복지, 경제활동 등)**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유기적 연계를 설계해야 한다. 폐교는 더 이상 과거의 종착점이 아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이야기와 축제가 시작된다면, 지역은 다시 살아 있는 문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 축제는 단지 하루짜리 행사가 아니라, 사라졌던 마을의 관계를 되살리는 살아 있는 사회적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