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활용

폐교를 돌봄 거점으로 전환한 마을형 어린이집 사례

tae-content 2025. 7. 8. 21:20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마을, 돌봄이 멈춘 사회

농촌의 초고령화와 인구 유출은 단지 통계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에서는 돌봄도, 교육도, 미래도 멈추게 된다. 특히 맞벌이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농촌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많은 농촌에는 수년 전까지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 건물 즉 폐교가 그대로 남아 있다.

 

폐교를 돌봄 거점으로

 

그 공간을 다시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단지 건물 재활용이 아니라 지역 돌봄 시스템의 재구축이자, 농촌의 재생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적 해법이 될 수 있다. 최근 몇몇 지자체에서는 폐교를 리모델링해 ‘마을형 어린이집’ 또는 ‘돌봄 통합센터’로 운영하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는 유휴공간 활용, 교육 격차 해소, 공동체 회복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폐교 기반 마을형 어린이집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지역사회 내 돌봄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심층 분석한다.

 

폐교가 아이들의 집이 되기까지

경상남도 합천군의 한 면 지역에서는 2019년 폐교된 분교를 리모델링해 ‘작은마을어린이집’이라는 이름의 마을형 보육시설을 개원했다. 이 지역은 기존에 어린이집이 없어 차량으로 40분 이상 이동해야 했고, 이로 인해 젊은 부부의 정착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해당 어린이집은 폐교 교사 2칸을 개조하여 보육실, 놀이방, 급식실, 간이도서관을 설치했고, 운동장은 실외 놀이터와 텃밭 체험 공간으로 재설계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시설이 단순한 어린이집 기능에 그치지 않고, 주민 공동 육아활동, 할머니 자원봉사 돌봄, 농번기 맞춤형 시간 연장 보육 등 지역 맞춤형 커뮤니티 돌봄 모델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근 마을의 어르신들이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밥을 지어주는 등 세대 통합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학부모는 어린이집 운영위원회에 참여해 운영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였다. 이처럼 폐교는 단지 기능만 전환된 것이 아니라, 지역 전체가 아이를 함께 키우는 구조를 회복하는 중심지가 된 것이다.

 

지역 돌봄 거점으로서의 효과와 가치

폐교 기반 마을형 어린이집이 가지는 가장 큰 사회적 가치는 돌봄의 공공성과 공동체성을 동시에 회복했다는 점이다. 첫째, 지리적 접근성이 개선되었다. 기존에는 농촌지역에서 보육시설 접근 자체가 어려웠으나, 폐교를 활용한 인근 마을형 어린이집 설치는 통학 시간 단축, 긴급 돌봄 수요 충족, 시간 연장 보육 실현 등 실질적 편익을 제공했다. 둘째, 지역 유휴공간의 효율적 활용이다. 방치되던 교실은 새로운 기능을 갖춘 돌봄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고, 운동장과 부속건물은 지역 주민의 다양한 활동 공간으로 확대되었다. 셋째, 세대 간 돌봄 참여 모델 구축이다. 어르신이 돌봄에 함께 참여하고, 부모들이 운영에 관여함으로써 ‘마을 전체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구조’가 가능해졌다. 넷째, 청년 정착 기반 마련이다. 보육환경 개선으로 인해 귀촌을 고민하던 젊은 부부들이 지역에 정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농촌의 인구 유입과 지속 가능성 회복에도 기여하고 있다. 폐교는 더 이상 과거의 끝이 아니라, 미래의 시작이 되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이 사례는 증명한다.

 

지속 가능한 마을형 어린이집 운영을 위한 조건

폐교 기반 어린이집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장기적인 행정 협약 체결이다. 현재 폐교는 대부분 교육청 소유이며, 용도 변경 및 임대 계약이 단기적으로만 이루어져 안정적인 장기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 지자체와 교육청 간 협약을 통해 보육시설 목적의 장기 무상임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운영비 및 인건비 보조 체계다. 마을형 어린이집은 규모가 작고 운영 여력이 낮기 때문에, 정부 및 지자체의 운영비 지원, 보육 교사 인건비, 프로그램 운영비 등의 지속적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셋째, 지역 맞춤형 커리큘럼 개발과 인력 양성이다. 농촌 환경에 맞는 자연 중심 체험교육, 지역 어르신 참여형 프로그램, 전통문화 전달형 활동 등이 포함된 교육 콘텐츠를 설계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자원봉사자를 함께 양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폐교를 단순 보육시설이 아닌 지역 전체의 돌봄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역아동센터, 주민 교육 공간, 공동육아 모임 등과의 연계성을 확보하는 종합 운영 모델이 요구된다. 아이가 떠난 학교가 다시 아이를 품게 될 때, 마을도 함께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