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활용

폐교 유휴교실을 공유 사무실로 활용한 농촌 디지털노마드 사례

tae-content 2025. 7. 7. 03:09

고요한 교실에 다시 연결된 와이파이, 그리고 새로운 일의 시작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기반의 원격 근무와 프리랜서 중심의 업무 형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일하는 공간에 대한 개념 역시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도심의 비싼 공유 오피스 대신, 더 넓고 조용한 공간에서 자연과 함께 일하고자 하는 ‘디지털노마드’ 혹은 ‘로컬 워커’들이 점점 농촌으로 이동하고 있다.

 

폐교 유휴교실 공유 활용 사무실

 

그러나 농촌에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업무 공간이 부족하거나, 행정적·인프라적 여건이 미비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몇몇 지역에서는 폐교 유휴교실을 리모델링하여 디지털노마드를 위한 공유 사무실로 운영하는 실험을 시작했고, 이 모델은 유휴자산 활용과 인구 유입,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폐교를 공유 오피스로 전환한 사례를 바탕으로, 농촌이 디지털노마드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과 과제를 함께 살펴본다. 교실이 더 이상 수업이 아닌 일의 공간이 되는 순간, 지역은 다시 외부와 연결되기 시작한다.

 

폐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

경북 영양군의 한 마을에서는 2017년 폐교된 분교의 유휴 교실 3개를 리모델링해, 디지털노마드를 위한 공유 오피스 ‘로컬워크랩’을 개소했다. 해당 공간은 고속 와이파이, 회의실, 영상촬영 스튜디오, 프린터 및 화상회의 장비 등을 갖추었으며, 별도 카페테리아와 공동 주방도 함께 운영되어 일과 생활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초기에는 지역 청년 창업자 2~3명이 입주하며 소규모로 운영됐으나, 이후 SNS와 뉴스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서울·부산 등 대도시의 프리랜서, 디자이너, 영상편집자, IT 개발자 등이 단기 입주를 신청하게 되었다.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입주자의 절반 이상이 장기 정착을 선택하거나, 로컬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지역과 연계된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던 한 디지털노마드는 지역 주민 인터뷰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소개했고, 이 영상을 통해 마을에 새로운 체험관광 수요가 발생하기도 했다. 과거 조용했던 교실이, 이제는 화상회의, 콘텐츠 기획, 지역 프로젝트가 동시에 벌어지는 창조적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폐교 기반 디지털노마드 거점의 사회적 효과

폐교 유휴교실을 공유 사무실로 활용한 사례는 단순히 일할 수 있는 공간 제공을 넘어서,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새로운 사회적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첫째, 인구 유입의 효과다. 도시에 살던 청년들이 단기 체류를 계기로 귀촌 또는 이주를 결심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이들은 단지 거주자가 아닌 지역 문제 해결을 함께 고민하는 창의 인재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지역 자원과 콘텐츠의 재발견이다. 디지털노마드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마을의 소소한 풍경과 문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며, 지역이 갖고 있던 정체성과 매력을 외부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다. 셋째, 세대 간 연결의 촉매다. 공유 오피스 내에서 운영되는 ‘로컬워크클래스’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 어르신과 디지털노마드가 함께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히거나, 마을 전통 기술을 콘텐츠화하는 협업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형태의 세대 간 지식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 경제의 순환 구조도 형성된다. 이들이 지역 내 숙박, 음식, 소규모 공간 대여 등을 이용하면서 지역 내 소비가 늘고, 기존 주민과의 경제적 접점도 확대되고 있다. 폐교는 더 이상 과거의 기억이 멈춘 장소가 아니라, 미래형 일자리 생태계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모델로의 확장을 위한 조건

폐교를 디지털노마드를 위한 공유 오피스로 전환하는 모델이 보다 확산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 조건이 따라야 한다. 첫째, 인프라 보완과 행정 지원이다. 아무리 공간이 넓고 저렴해도, 인터넷 속도가 느리거나 전기·냉난방 시설이 불완전하면 장기 체류가 어렵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기본 설비 지원과 동시에, 입주자 유치를 위한 정보 플랫폼 구축과 행정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 둘째, 지역사회와의 관계 설계다. 폐교 공간이 외지인만의 공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의 교류를 유도하는 구조여야만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마을 축제 기획 협업, 청년-주민 공동 워크숍, 지역 창업 프로젝트 연결 등이 효과적이다. 셋째, 프로그램 다양화와 네트워크 운영이다. 단순 오피스를 넘어서 워케이션, 마을 미디어, 로컬 창업 인큐베이팅 등 멀티형 콘텐츠 허브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교육청과의 협약이 길게 유지되어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며, 공간 소유권이나 임대 조건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어야 외부 투자 유치도 가능해진다. 폐교는 도시의 잉여 공간이 아니라, 농촌의 가능성을 담는 혁신의 실험실이 될 수 있다. 그 교실에 다시 전기가 켜지고 와이파이가 연결될 때, 농촌은 일하는 방식의 미래를 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