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를 지역 영상 제작소로 활용한 로컬 미디어 성공 사례
영상이 마을을 기록하고, 마을을 다시 연결하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 정보와 콘텐츠는 이제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관계를 복원하는 수단이 되었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농촌 사회에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이야기, 사라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고, 보존하는 움직임은 로컬 미디어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가 바로 ‘폐교를 영상 제작소로 전환하여 운영하는 지역 기반 미디어 실험’이다.
버려진 교실이 카메라가 되고, 편집실이 되며,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의 일상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이 모델은 단지 공간의 재활용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콘텐츠 산업 육성, 세대 간 소통 강화, 외부 유입 기반 조성 등 다층적인 효과를 동시에 창출할 수 있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폐교를 로컬 미디어 제작소로 전환한 실제 성공 사례를 분석하고, 그 사회문화적 가치와 향후 확장 가능성에 대해 살펴본다. 지역을 기록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기록하는 일이며, 그 중심에는 공간이 있다.
폐교가 영상의 거점이 된 마을 이야기
강원도 정선군의 한 마을은 2016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마을영상창작소’로 탈바꿈시켰다. 초기에는 문화재단의 공모사업을 통해 기초 설비(촬영 장비, 편집 컴퓨터, 조명, 음향기기 등)를 마련했고, 이후에는 마을 청년과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영상 제작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주민 스스로 출연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참여형 로컬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어르신의 하루’, ‘우리 마을 김장 풍경’, ‘마을기업 운영기’, ‘세대 간 인터뷰 프로젝트’ 등 다양한 주제의 영상들이 제작됐고, 유튜브와 SNS를 통해 외부에도 공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을의 이야기, 기술, 기억이 영상이라는 매체로 기록되었으며, 주민의 자존감 향상과 지역 외부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전파 효과도 함께 발생했다. 현재는 이 창작소가 지역 청년 창업자들에게 영상 편집 공간으로도 개방되고 있으며, 일부 주민은 마을홍보 영상 제작을 외부에서 의뢰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1인 창작자로 성장하고 있다.
로컬 미디어 공간의 다층적 효과와 변화
폐교를 로컬 미디어 거점으로 전환한 이 모델은 여러 차원의 효과를 낳고 있다. 첫째, 기록을 통한 공동체 회복이다. 영상 제작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의 과거를 되짚고 현재를 성찰하며, 주민 개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 둘째, 기술 역량 강화와 세대 간 디지털 격차 해소다. 디지털 영상 제작 교육은 고령자에게는 스마트 기기를 익히는 기회가 되고, 청년에게는 전문 역량 개발과 지역 정착의 계기가 된다. 셋째, 경제적 확장성이다. 지역 홍보 영상, 행사 기록물 제작, 영상 공모전 출품 등으로 수익이 발생할 수 있고, 일부 주민은 지역 내 타 마을을 대상으로 콘텐츠 제작 교육을 하며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로 성장하고 있다. 넷째, 문화 자산화다. 폐교를 활용한 로컬 미디어 콘텐츠는 마을의 정체성을 외부에 알리는 동시에, 그 자료들이 미래 세대를 위한 살아 있는 기록 아카이브가 된다. 이처럼 영상은 기록이자 교육이고, 치유이자 자산이며, 공동체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외부와 연결되는 가장 강력한 소통 수단으로 작동한다.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한 조건과 제언
폐교를 영상 제작소로 활용한 모델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장비와 인프라에 대한 정기적인 유지 관리 예산 확보가 중요하다. 초기 공모사업 이후 지원이 끊기면 장비 노후화로 활용도가 급격히 떨어질 수 있으므로, 지자체나 지역재단의 매년 운영지원 예산 배정이 필요하다. 둘째, 전문 인력과의 연계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영상 기술을 가진 청년 창작자나 외부 전문가가 정기적으로 마을에 머무르며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in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효과적이다. 셋째, 콘텐츠 유통 채널 확보도 중요하다. 제작된 영상이 단순히 유튜브에 머무르지 않고, 지자체 홍보 콘텐츠, 지역 학교 교육자료, 지역축제 상영물 등 다양한 경로로 확산될 수 있도록 연계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폐교를 단순히 영상 제작 장소가 아닌 문화·기록·교육 복합 거점으로 포지셔닝하여 마을 전체의 문화력과 콘텐츠 자생력을 높이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영상을 만든다는 건, 마을의 얼굴을 만드는 일이다. 그 얼굴이 자랑스럽게 외부에 보여질 수 있도록, 폐교는 더 이상 죽은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