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활용

폐교 운동장을 활용한 주민 텃밭 공동체 형성 과정

tae-content 2025. 7. 5. 03:18

폐교 운동장이 되자, 마을의 관계도 사라졌다

한때 아이들이 뛰놀던 학교 운동장은 폐교와 함께 조용히 침묵하게 되었다. 울타리 안으로 자라는 잡초, 부서진 축구 골대, 멈춘 시계처럼 버려진 그곳은 오랫동안 마을에서 가장 넓은 공공 공간이자, 동시에 아무도 쓰지 않는 땅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몇 마을에서는 이 운동장을 단순한 유휴 부지가 아닌, 주민들이 함께 작물을 키우고 교류하는 ‘공동체 텃밭’으로 전환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폐교 운동장 활용 주민 텃밭

 

농촌 마을에서조차 개인 텃밭은 사유지로 나뉘어 있고, 고령자들은 건강 문제로 집 근처에서도 농사 짓기를 꺼려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폐교 운동장이라는 ‘중립적이고 평평한 공간’은 모두가 함께 쓰기에 적절한 장소로 재조명되었다. 본 글은 폐교 운동장을 활용해 공동체 텃밭을 조성한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공간의 재생이 어떻게 관계의 재건으로 이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단순한 텃밭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이 실천은, 지역 공동체의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힌트다.

 

흙을 갈아엎기보다 먼저 마음을 모았다

경상남도 하동군의 한 마을은 폐교된 분교의 운동장을 활용해 주민 공동 텃밭 조성 사업을 2021년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군청에서 폐교를 어떻게 활용할지 의견을 수렴했고, 마을회와 노인회,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텃밭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중요한 건 땅보다 사람의 마음이었다. 조성 초기에는 마을 주민 40여 명을 대상으로 ‘함께 농사짓기 워크숍’과 작물 계획 수립 회의를 수차례 진행했고, 공동체 운영 규칙도 투표를 통해 만들었다. 이후 교육청과의 협의로 운동장 일부를 임시 사용하도록 승인을 받고, 군에서 간이 급수 시설과 관수 호스를 지원하며 실제 조성이 이뤄졌다. 첫 해에는 고구마, 상추, 쪽파, 열무 등 돌봄이 비교적 쉬운 작물 위주로 재배했고, 구획은 개인별 아닌 6인 1조로 구성된 팀 단위로 운영됐다. 중요한 건 생산보다 소통과 협업이었다. 매주 모여 밭을 돌보고, 간이 천막 밑에서 도시락을 나눠 먹고, 수확한 채소를 함께 분배하며 운동장이 다시 마을의 중심 공간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텃밭이 된 운동장이 주민에게 준 변화

폐교 운동장이 텃밭으로 변한 이후,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 고립된 노년층의 사회적 관계망이 회복되었다. 특히 혼자 지내는 어르신들이 텃밭을 이유로 주기적으로 이웃들과 만나며 정서적 안정감을 되찾았고, 자연스럽게 이웃 간 돌봄 체계가 형성되었다. 둘째, 텃밭을 중심으로 새로운 활동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씨앗 나눔 장터, 김장 나눔, 요리 대회, 마을 기록 전시 등 텃밭에서 출발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점점 다양화되었다. 셋째, 주민 자치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을회 내부에 ‘텃밭 운영위원회’가 구성되고, 젊은 귀촌인과 고령자 간의 협업도 늘어나며, 세대 간의 소통과 역할 분담이 안정적으로 정착되었다. 마지막으로, 운동장이 단지 작물을 키우는 땅이 아니라, 사람과 이야기가 자라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점에서 폐교 텃밭은 물리적 재생을 넘어 정서적 공동체 기반 복원의 모델이 되었다. 더 이상 운동장은 죽은 공간이 아니다. 땀과 웃음, 대화와 협력이 뿌리내리는 살아 있는 마을의 심장이 되었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 텃밭을 위한 조건

폐교 운동장 텃밭이 일회성 체험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마을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공간 운영에 대한 명확한 협약 체계가 필요하다. 교육청 소유의 폐교는 임시 사용 기간과 범위에 제약이 많기 때문에, 지자체와 교육청 간의 장기 무상사용 협약이나, 공동 관리 협의체 구성이 요구된다. 둘째, 주민 역량 강화를 위한 중간지원조직의 개입이 중요하다. 단순 농사기술이 아니라, 갈등 조정, 공동체 운영, 리더십 발굴 등의 교육이 병행돼야 자율적 운영이 가능하다. 셋째, 수확 외의 부가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마을 브랜딩, 농산물 가공 체험, 친환경 농업 교육 프로그램 등과 결합하면 경제적·교육적 파급 효과가 커질 수 있다. 넷째, 텃밭을 매개로 세대, 계층, 이주민이 모두 어우러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함께 돌보고, 함께 나누며, 함께 웃는 구조가 작동해야 비로소 공동체 텃밭은 오래간다. 폐교 운동장은 다시 사람의 온기를 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그곳에 흙을 일군 사람들의 땀이 배어 있다면, 그 공간은 다시 마을의 중심이 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