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를 활용한 협동조합 모델, 지속 가능한가?
공동의 공간, 공동의 소유로 되살아나다
농촌과 소도시에서 폐교는 지역의 소멸을 체감하는 상징적 장소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폐교를 단순한 문화 공간이나 체험장으로 사용하는 데서 더 나아가, ‘협동조합 모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주민들이 직접 폐교 공간의 기획, 운영, 수익 창출 활동에 참여하며, 자율적 방식으로 공동체 경제를 실현하려는 시도다.
협동조합은 그 특성상 공동 소유, 민주적 운영, 수익 공유를 전제로 하기에, 폐교라는 물리적 자산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의 역량과 연대 의지를 결집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운영의 지속성, 수익 구조의 안정성, 지역사회 내부의 합의력 등 다양한 과제가 얽혀 있어, 이러한 모델이 실제로 지속 가능한 형태로 안착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폐교 협동조합 모델의 개념과 실제 운영 사례를 바탕으로, 그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하고, 지역 기반 협동조합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폐교 실제 운영 사례 – 지역 주도의 공동 경영 실험
경상북도 청송군의 ○○마을협동조합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활용하여 지역 농산물 가공 및 판매, 수공예 체험 프로그램, 농촌관광 서비스 등을 운영하는 다기능형 협동조합 모델을 구축했다. 이 조합은 마을 주민 30여 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학교 건물 일부를 개조해 공동작업장, 가공실, 마을식당, 방문자 안내소로 구성하였다. 운영 초기에는 행정의 지원을 받아 기초 인프라를 마련했지만, 3년차부터는 자체 수익 구조를 만들어 운영비의 60% 이상을 자립 재원으로 확보하고 있다. 반면 강원도의 한 폐교 협동조합은 주민 간 의견 충돌과 수익 모델 부재, 책임 회피 등의 문제로 개소 2년 만에 활동이 중단되었으며, 현재는 일부 공간만 외부 임대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두 사례의 차이는 사전 기획 단계에서의 주민 참여 수준, 운영 리더십의 전문성, 그리고 장기적인 사업 설계 여부에 있었다. 성공한 조합은 주민들이 단순 참여자가 아닌 공동 기획자와 사용자로 참여했으며, 외부 전문가와 연계해 교육·홍보·브랜딩 등 전문 역량을 갖춘 점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폐교 협동조합 모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의지보다 체계적인 사업 전략과 내부 합의 구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요인들
폐교 협동조합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수익 모델의 약함이다. 대부분의 폐교 협동조합은 지역 특산물 판매나 체험 프로그램 운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계절성과 외부 관광객 유입에 따라 매출 변동성이 크고 안정성이 떨어지는 구조다. 둘째, 운영 주체 간의 역할 모호성과 갈등이다. 조합원 간 운영 책임 분담이 불명확하거나, 일부 주도 세력 중심으로 운영이 편중되면 민주적 운영 원칙이 무너지고, 내부 불신이 발생하게 된다. 셋째, 행정과의 관계 문제다. 초기 인프라 구축 단계에서는 지자체의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도 계속 의존하게 되면 자생력이 약화되거나 정책 변화에 휘둘릴 위험이 커진다. 또한 폐교 건물의 소유권이 교육청에 남아 있어, 임대 기간의 불확실성과 건물 유지 보수에 대한 재정 부담도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요인을 해결하지 못한 협동조합은 수익 저하와 갈등 심화로 공간만 유지된 채 공동체는 해체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속 가능한 협동조합 모델을 위한 조건
폐교를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 모델이 지속 가능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주민 교육과 역량 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협동조합은 자율과 책임, 연대의 원칙에 기반하기 때문에 운영 전 단계에서 회계, 마케팅, 리더십, 조직운영에 대한 실질적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 사업모델의 다양화와 전문화가 중요하다. 단순 체험 위주에서 벗어나 온라인 판매, 지역 콘텐츠 상품화, 소규모 창업 유치 등 다각적 수익 구조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장기 운영을 위한 법적·제도적 안정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어 교육청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폐교협동조합 운영협약’을 체결해 임대 기간 안정화와 시설 유지 보수 지원을 보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넷째, 외부 전문가나 청년 활동가와의 협력 구조를 만들고, 지역 내부에만 의존하지 않는 네트워크 운영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운영 전 과정에 주민 주도 거버넌스를 내재화하고, 실패에 대한 공동 책임과 재도전이 가능한 ‘학습형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폐교 협동조합은 단지 지역 경제 활성화의 수단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공간을 되살리고 관계를 재건하며,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적 실험이다. 그 실험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 구조, 신뢰의 3박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