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주도 폐교 활용 정책이 실패하는 진짜 이유
의도는 좋았지만 남은 건 빈 폐교뿐
농촌 지역의 학교가 폐교되면서, 수많은 유휴 공간이 전국 곳곳에 남겨졌다. 이에 대응해 각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센터, 치유공간, 창업지원시설, 체험학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폐교 활용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실제 운영 현황을 들여다보면 1~2년 운영 후 중단되거나, 활용률이 낮아 방치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외형상 건물을 잘 단장했지만 방문객은 거의 없고, 지역 주민조차 그 공간의 존재를 모르거나 활용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많은 폐교 재생 프로젝트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단순한 예산 부족이나 인력 부족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정책 기획의 구조와 실행 방식에서 중대한 착오가 반복되고 있다. 이 글은 지자체 주도의 폐교 활용 정책이 왜 실패하는지를 단순 현상 분석이 아닌 구조적 원인과 지역사회 관계 관점에서 진단하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정책 전환의 조건을 제안한다.
폐교 활용 정책의 ‘공간 중심 사고’와 지역 현실의 괴리
지자체의 많은 폐교 활용 사업은 공간 리모델링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어떻게 꾸밀 것인가’가 핵심 과제가 되고, 정작 그 안에서 누가, 무엇을, 왜 하게 될 것인가는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대부분은 외부 설계사나 기획사의 공모사업 형식으로 진행되며, 사업 계획서 단계부터 지역 주민은 사실상 소외된다. 그 결과 공간은 멋지게 변신했지만, 사용자는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실제로 전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5억 원을 들여 폐교를 문화예술 복합센터로 조성했지만, 운영 1년 만에 프로그램이 끊기고 현재는 비어 있는 상태다. 이유는 간단했다. 해당 마을에는 예술 활동을 지속할 인력도, 이를 관리할 조직도 없었고, 주민들은 “우리가 쓰는 공간이 아니라 외부 전시회장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민의 수요와 생활 양식, 실제 활용 패턴을 고려하지 않은 공간 중심 정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 사회와 괴리되고, 결국 소외된 빈 공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폐교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을 지역 맥락이 우선되어야 한다.
운영 주체 부재와 행정 중심 구조의 한계
폐교 활용 정책이 실패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운영 주체의 부재 또는 전문성 부족이다. 초기 조성은 공모 사업으로 화려하게 출발하지만, 운영 단계에 들어서면 행정은 물러나고 민간은 주체가 없다. 많은 지자체가 민간위탁이라는 형식적 방식을 통해 외부 법인에 운영을 맡기거나, 지자체 산하 시설로 편입시켜 공무원 주도로 관리한다. 그러나 문화, 교육, 복지, 창업 등의 복합 기능을 가진 폐교 재생 공간은 단순 행정 관리만으로는 절대 유지될 수 없다. 전문적인 기획과 운영 능력을 가진 중간지원조직 또는 지역 기반 민간조직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더불어, 예산이 1~2년 단기 보조금으로 끊기기 때문에 운영 인력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장기 계획 수립도 불가능하다. 전북의 한 폐교 창업센터는 개소 2년 만에 상주 창업자가 전원 이탈했고, 그 이유는 “운영 구조가 안정적이지 않아 사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공간 문제가 아니라, 운영 체계 설계 실패로 인한 결과이며, 지자체가 주도할 것이 아니라 지역 주체와의 파트너십을 우선 고려했어야 할 구조적 문제다.
지역 주민의 ‘사용자’가 아닌 ‘관람자’로의 전락
가장 본질적인 실패 요인은 지역 주민의 배제 또는 수동적 참여 유도 방식에 있다. 폐교는 원래 마을 아이들이 뛰놀고, 어른들이 학교 행사에 참여하며 마을 전체가 함께 호흡하던 장소였다. 그러나 지자체 중심의 활용 정책은 주민을 단지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설정하고, 기획과 설계, 운영 구조에는 주민이 주체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이로 인해 주민은 폐교 공간에서 거리감을 느끼고, 심지어는 “그건 행정의 일이야”라며 무관심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강원도의 한 폐교 커뮤니티센터는 ‘주민 소통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로 주민 회의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관리직 공무원이 정해진 시간에만 열고 닫는 구조였다. 관계 없는 공간에 지역감정은 자라지 않는다. 폐교 재생은 건물의 외관보다도 그 안에 다시 지역민이 모이고, 서로를 알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이 핵심이다. 따라서 진정한 성공은 지역 주민이 공간을 기획하고, 스스로 운영하고, 실패도 감내할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지자체가 해야 할 역할은 공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그 공간을 자기 공간으로 받아들이도록 연결하는 설계자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