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재생 사업, 단순한 공간 복원이 아닌 지역 관계망의 복원
학교가 사라진 마을, 무엇이 함께 무너졌는가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에서 학교는 단지 교육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마을의 중심이자, 세대 간 연결의 매개이며,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를 확인하고 교류하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그러나 학생 수 감소와 도심 집중화로 인해 전국적으로 폐교가 속출하면서, 단지 물리적인 건물만이 아니라 지역의 관계망, 일상의 네트워크, 공동체의 기억까지 함께 사라졌다. 폐교 재생 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다.
초기에는 건물의 물리적 활용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점차 그 본질이 “잃어버린 지역의 연결 구조를 어떻게 다시 회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고 있다. 공간을 단순히 리모델링하는 것을 넘어서, 그 공간을 중심으로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 마을과 외부 간의 관계를 다시 짜는 것이 폐교 재생의 진짜 목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 글은 폐교 재생이 ‘공간 복원’을 넘어 ‘관계 복원’으로 진화하고 있는 배경과 사례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지역 재생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본다.
폐교 재생, 관계 중심으로 설계된 사례들
충청북도 제천시의 ‘○○마을학교’는 폐교를 지역민 교육과 문화 교류의 장으로 재탄생시킨 대표 사례다. 단순한 건물 리모델링을 넘어, 지역 어르신의 구술사 강연, 청소년과 청년의 마을 신문 제작, 학부모와 교사 출신 주민의 협업 프로젝트 등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세대 간 단절이 자연스럽게 치유되고 있다. 또 다른 사례인 전남 강진군의 ‘○○공유센터’는 폐교를 다세대 소통 공간으로 전환해 농업인, 예술가, 귀촌 청년들이 함께 협업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 생활 공방, 지역 축제 기획단 등이 함께 활동하며, 주민 누구나 기획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다. 이처럼 공간이 기능을 되찾는 동시에, 관계망이 다시 형성되는 설계가 이뤄질 때 폐교 재생은 단순한 건축 프로젝트가 아닌, 지역 사회의 사회적 인프라 복원 사업으로 기능하게 된다. 특히 이런 관계 중심 설계는 청년 정착률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지역 자립적 생태계 형성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관계망 복원의 효과 –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속되는 변화
폐교 재생 사업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물리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관계의 회복이 지역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 효과다. 첫째, 마을 주민들이 오랜만에 공동의 목표 아래 모이게 되며, 서로의 역할과 재능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둘째, 외부와의 연결이 활발해진다. 폐교 공간에서 열린 프로그램을 계기로 다른 지역의 단체, 청년 창업가, 예술가, 대학생 봉사팀 등이 마을을 찾고, 일회성 방문을 넘어 교류형 체류의 시작점이 된다. 셋째, 청년과 고령층, 기존 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간극이 좁아진다. 특히 세대가 달라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배우고, 기획하고, 운영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러운 이해와 공감의 장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관계망이 쌓이면 마을의 문제를 행정이 아닌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자율 해결력’이 강화된다. 예산 중심의 외부 지원이 줄어들더라도 관계 중심의 네트워크는 남아 있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이 높고, 위기 대응 능력도 향상된다. 폐교 재생을 통해 공간과 관계가 동시에 회복되었을 때, 지역은 다시 살아 숨 쉬는 공동체로 전환될 수 있다.
관계 중심 폐교 재생을 위한 제도적 과제와 정책 방향
폐교 재생을 관계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공간 리모델링 지원을 넘어서는 포괄적 행정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공모사업의 평가 기준이 물리적 완성도나 방문자 수에만 치중될 것이 아니라, 관계 형성과 주민 참여도, 자율 운영 구조 형성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가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공간 운영 주체를 선정할 때도 외부 법인보다는 지역 내부의 주민 조직이나 협동조합, 마을교육공동체 등 지역 주체 중심의 거버넌스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셋째, 장기적 관계 형성을 위한 예산 구조도 필요하다. 공간 조성 이후 최소 3~5년간 운영비 일부를 보조하며, 지역 조직이 자체 수익모델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자립화 단계별 인큐베이팅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공간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뤄지는 콘텐츠와 사람이 연결될 수 있도록 중간지원조직의 역할 강화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전국 폐교 재생 사례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우수 사례 공유와 확산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폐교는 건물이 아니라 관계의 기억이 담긴 장소다. 그리고 그 기억을 복원하는 일은, 지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