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기반 마을학교, 진짜 교육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폐교에 다시 불 켜진 배움의 불씨
전국 각지에서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은 폐교는 이제 교육의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배움의 출발점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교육 현장에서는 기존 학교 시스템의 경직성, 입시 중심 교육, 지역 간 교육 격차 등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마을학교’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마을학교란 폐교 등 유휴 공간을 활용해 지역 주민과 학부모, 교육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운영하는 비형식적이고 공동체 중심의 교육 공간을 의미한다.
이 공간은 단순한 방과후 학습이 아닌, 지역 자원과 삶의 맥락 속에서 학습이 이루어지는 ‘삶 기반 교육’이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특히 폐교를 활용한 마을학교는 물리적 인프라를 최소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과거 교육의 상징이던 공간을 새로운 교육 실험의 현장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정책적·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 글에서는 폐교 기반 마을학교의 개념과 실제 운영 사례를 소개하고, 그것이 진짜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해본다.
마을학교의 실제 사례와 운영 방식
경상남도 산청군의 ‘심현마을학교’는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를 활용해 조성된 대표적인 마을학교 사례이다. 이 학교는 지역 초·중학생과 학부모, 퇴직 교사들이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생태 환경 교육, 전통문화 체험, 진로탐색, 마을 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규 학교 교육을 보완하는 보조적 프로그램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 2~3회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공동 커리큘럼 기반의 교육 공간이다. 전북 완주군은 ‘열린학교’라는 이름으로 폐교를 리모델링해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 농부와 예술가가 교육자 역할을 맡아 텃밭 수업, 창작미술, 마을신문 만들기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경기 양평군의 한 마을학교는 ‘홈스쿨형 마을교육 공동체’를 지향하며, 일부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정규 학교 대신 이 공간을 선택하고 있다. 공간은 과거의 교실 구조를 살려 공동 수업 공간, 토론방, 놀이방, 부모교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행정기관과 민간재단이 공동으로 운영비를 부담하고 있다. 이처럼 마을학교는 각 지역의 상황과 요구에 맞게 다양하게 구성되고 있으며, 지역 맞춤형 교육 실험장으로서 진화하고 있다.
마을학교가 제공하는 교육적 가치와 사회적 효과
폐교 기반 마을학교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학습의 주체가 학습자와 지역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적인 학교 시스템이 제공하지 못했던 자율성과 창의성, 공동체성을 복원한다는 측면에서 대안교육으로서 의미가 크다. 마을학교에서는 평가 중심이 아닌 과정 중심의 학습이 강조되며, 학생은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교육 활동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공동 창작자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마을 환경 조사 프로젝트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지역 문제를 찾아내고, 주민 인터뷰와 데이터 수집, 해결 방안 제안까지 수행하며 실제 정책 제안서로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험은 학습의 실질적 동기부여가 되어 학생의 자기효능감, 협업 능력, 발표력 등 다양한 역량을 키우게 한다. 또한, 마을학교는 지역사회와 교육의 경계를 허물면서, 청년과 고령자, 이주민 등 다양한 계층이 교육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세대 간 통합의 장으로도 작용한다. 무엇보다 폐교 공간을 공동체 중심의 교육 거점으로 전환함으로써 지역 정체성을 회복하고, 마을 소멸의 흐름을 교육이라는 방법으로 저지하는 효과도 있다. 실제 일부 농촌에서는 마을학교 운영을 계기로 귀촌 가족이 증가하거나, 청년 교사가 정착하는 등 지역 인구 회복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조건과 제도적 과제
그러나 폐교 기반 마을학교가 진짜 교육 대안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안정적인 운영 재정이다. 현재 마을학교의 대부분은 공모사업 예산이나 민간 재단의 일회성 후원에 의존하고 있어 지속 운영에 취약하다. 지속 가능한 모델을 위해서는 지자체의 기본 운영비 보장, 공간 사용에 대한 법적 안정성, 교사 인건비 확보 등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 둘째, 전문 인력의 확보와 양성이 과제로 지적된다. 마을학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주민이 함께 설계하고 운영해야 하지만, 이를 조율하고 연결할 수 있는 마을교육 코디네이터 역할이 지역마다 부족하다. 셋째, 정규 교육과의 연계 구조 부족도 한계로 나타난다. 마을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학교 성적이나 진학에 직접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일부 학부모는 참여를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교육청과의 협력 모델, 학습 인증제 도입, 생활기록부 반영 등을 포함한 제도화 방안이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공간 관리 주체와 행정의 역할이 명확해야 한다. 폐교를 단순 임대하거나, 특정 단체에 일방적으로 위임할 경우 운영의 불균형이나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마을학교는 ‘교육 공간’이면서도 공공성과 자율성이 조화된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어야 하며, 이것이 진짜 교육 대안이 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폐교는 단지 쓰이지 않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배움의 불을 지필 수 있는 교육 실험의 무대이며, 미래형 교육 모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